야구이야기

15시즌 프로야구 용병계약 - 라이언 피어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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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말 - 몸이 안좋아서 몇일 쉬었더니 글쓸게 한가득이네요.

넥센 히어로즈

라이언 피어밴드

Ryan Robert Feierabend

1985년 8월 22일생 (29세)

190cm / 102kg

투수 / 좌투좌타

2003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3라운드 시애틀 매리너스 지명

 

총액 38만 달러

(계약금 3만, 연봉 27만, 옵션 8만)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 (4시즌)

113.1이닝 31게임 19선발 2승 11패 방어율 7.15

 

마이너리그 통산 (11시즌)

루키 2시즌

싱글A- 1시즌

싱글A 1시즌

싱글A+ 1시즌

더블A 3시즌

트리플A 7시즌

 

트리플A 통산 기록 (7시즌)

683.2이닝 133게임 115선발 42승 35패 방어율 4.50

 

피어밴드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태생으로 속칭 지역 토박이 출신이다.

그래프턴의 미드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마추어 드래프트 3라운드에 지명되는

쾌거를 이루었는데 이것이 쾌거인 이유는

이 고등학교는 역사도 짧고 이 학교 출신의 풋볼선수는 있었지만

첫 야구선수의 탄생이 바로 라이언 피어밴드였기 때문이다.

거기다 3라운드라니, 놀랍지 아니한가.

(현재는 두명의 마이너리거가 더 있다.)

 

한국에 오게 되는 용병들은 아무래도 연봉이 적기 때문에

사연 하나쯤은 기본으로 달고오기 마련인데 피어밴드는 심하게 기구한 운명에 속한다.

그가 지명되었던 시애틀 매리너스는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항상 상위권에서 놀던 강력한 팀이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는 커녕 챔피언쉽에서 3패, 디비젼에서 1패를 하였다.)

(사실상 팀 창단후 이때만 잘했다고 봐도 된다. 올해 14시즌부터 다시 이때의 영광을 찾으려 하고 있다.)

 

이 당시 시애틀은 피넬라 감독의 역량이 최고조에 있을때라 평가되고 있는데

10년간 장기집권을 하였고 이 10년동안 매리너스의 승률은 0.540 이다.

피넬라 감독이 교체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2001시즌의 매리너스가 너무 잘했기 때문인데 (꿈의 승률 7할에 성공했다. 116승 46패. 0.716)

이 때의 매리너스는 강력한 타선 (두자릿수 홈런 6명, 브렛분의 커리어하이 37홈런 시즌,

신인상, MVP, 골든글러브, 실버슬러거를 모두 독식한 이치로)

을 기반으로 탄탄한 투수진 (시즌 내 부상자는 단 한명이었으며 선발 5명이 10승이상을 기록한다. 모이어는 20승.)

으로 리그를 씹어드시는 팀이 되어있었다.

 

당연히 야구에서 7할승률은 말도안되는 승률이고 한 시즌 잘했다고 다음시즌에도 잘할것이란 보장은

어느팀에도 없지만 02시즌 지구3위로 추락한 매리너스에게 자비란 없었다.

그럼에도 승률은 0.574이다. 절대 못하지 않았다. 오클랜드와 애너하임이 강해졌을 뿐.

이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가 어떤 팀이었는지 쓰다가 또 얘기가 산으로 가는데

항상 그렇기 때문에 읽는분께 이해와 적절한 필터링을 부탁드린다.

 

이렇게 스타벅스의 도시 시애틀을 신흥 명문구단으로 세워놓은 피넬라 감독에게

매리너스는 02시즌을 마지막으로 결별을 한다. 이 때부터가 시애틀의 몰락이 시작된다.

주전들의 평균나이대가 모두 30대가 넘어가며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느끼고

체질 개선에 들어간 매리너스는 집중적인 유망주 관리에 나선다.

이 때 그들의 레이더에 걸린 선수 중 하나가 라이언 피어밴드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한페이지를 썼다.

 

피어밴드는 시애틀 산하의 마이너리그에서 트리플A 리그까지 올라오는데

루키리그에서의 단 한경기 빼고는 전 경기에 선발로 출장했다.

이런 코스를 밟는 선수는 구단에서 특급으로 관리하는 유망주만 가능하다.

이 때 피어밴드와 함께 시애틀의 총애를 받았던 다른 투수유망주는

현재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중 하나인 '킹' 펠릭스 에르난데스였다.

펠릭스는 03~05까지 딱 3년만 마이너리그 생활을 했는데 루키리그는 가보지도 않아서

똑같이 마이너생활을 시작한 피어밴드보다 항상 한단계 위의 리그에 있었다.

(추신수, 백차승은 더블A, 트리플A 리그에서 두 시즌 킹펠과 함께 했다.)

 

될성싶은 나무는 뿌리부터 다르다지만 킹펠은 너무나 큰 나무였고

05시즌 핫한 여름에 쇼킹하게 데뷔한 킹펠과 달리

피어밴드는 지구 최하위가 확정된 2006년 9월 중순 쩌리게임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다.

일년사이 둘은 너무나 격차가 큰 비교대상이 되어버렸다.

06시즌 펠릭스는 191이닝을 던지며 몸도 좋다는걸 증명한다.

물론 시애틀 매리너스는 계속 암흑기를 걷고 있었다.

 

07시즌을 출발부터 시원하게 말아먹은 피어밴드 (49.1이닝 1승6패 방어율 8.03)

와 달리 펠릭스는 'King' 닉네임을 달기 위해 날개짓을 시작하는데 (190.1이닝 14승7패 방어율 3.92)

엎친데 덮친격으로 잠시지만 경쟁자인 백차승도 선발진 합류에 성공했다. (73.1이닝 4승3패 방어율 5.15)

 

같은시기에 마이너리거 생활을 하던 피어밴드에게 자극이 안될리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멘탈이 날라간 상태에서 트리플A 로 내려온 어린 투수라면 90% 이상 시즌접었다고 봐야 한다.

피어밴드도 그랬다. 

 

분노의 08시즌을 시작한 피어밴드는 무서운 기세의 질주로

트리플A 리그를 초토화시키는데 (13게임 13선발 7승1패 방어율 2.04)

메이저리그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8게임 8선발 1승4패 방어율 7.71)

 

전 시즌에 이어 멘탈이 파괴되었을 수준의 피어밴드는 결국 팔꿈치에 탈이나고 말았다.

이 이후로 5년동안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못오를줄 누가 알았을까.

 

피어밴드는 토미존 수술로 09시즌을 통으로 날렸고 10시즌에는 재활에 실패했다.

재활에 실패한것만이 아니었다. 너무 교묘하게 짜여진듯 년수도 맞물려 지명 할당되었고

토미존 수술을한 재활중인 24세의 선발투수를 트레이드 상대해줄 팀은 없었다.

그렇게 그는 매리너스에서 방출이 되었고 자유계약 신분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 산하 트리플A 팀 리하이밸리에서 다시 재기를 꿈꾸는데

이때의 필리스는 전해까지 3년 연속 가을야구를 했고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08시즌은 우승을 했던 팀이었다.

 

할러데이 - 오스왈트 - 모이어 - 해멀스 - 블랜튼 - 켄드릭

이 선발진에 피어밴드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이 당시의 필리스는 마이너에서 콜업되는 투수를 한번써보고 바로 내릴정도로

투수진이 풍족했고 불펜또한 엄청났다. 이 때는 필리스의 시대였다.

 

콜업기회조차 적은 필리스 산하의 마이너리그에 있으면서 동기부여도 제대로 안됐을 마당에

피어밴드는 성적도 나오지 않았다. 또다시 방출.

 

12시즌은 6월에서야 신시네티 레즈과 계약을 했다.

레즈는 10시즌에 디비전시리즈에서 필리스에 떡실신을 당하고 11시즌에 주춤한 상태였고

그 상태는 12시즌 초반까지 이어져오고 있었다.

선발진에 구멍이 있었다. 피어밴드에게는 재기를 위한 무대로 적절해 보였다.

하지만 꼬일려면 이렇게 꼬이는 수도 없다.

시즌 중반부터 급하게 탄력받은 신시네티 레즈는 전시즌에 영입한 레이토스의 활약과

쿠에토의 에이스 등극을 자축하며 1위로 포스트시즌에 올랐고

피어밴드는 이미 7월에 방출된 상태였다.

(피어밴드는 약 40일동안만 레즈 소속의 선수였다.)

 

13시즌에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계약을 했다. 다행히 스프링캠프부터 참가했다.

쓰면서 생각해보니 15시즌 롯데 자이언츠에서 보게될 짐 아두치와 같이 2년동안

트리플A 팀 라운드락에 있었다.

13시즌은 그에게 처음으로 재활후 성공한 해가 되었다. (120.1이닝 6승5패 방어율 3.66)

그리고 14시즌 그가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다. 5년만이었다.

하지만 보직은 불펜이었다. 선발자리는 두자리가 펑크나 있는 상태였지만

텍사스는 24살의 동갑내기 테페쉬와 그림에게 선발기회를 준다.

 

5년전 똑같이 24살의 나이에 선발기회를 받았던 피어밴드는 29살이 되어있었고

경기중 언제나설지 모르는 불펜으로 대기하는데 야구인생 온종일을 선발투수로

살아온 선수가 불펜이 적응될리 없었다.

여기에 24살의 투수 둘에게 밀렸던 선발자리에 이어

불펜에서는 22살의 오티즈에게 밀려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6게임 7.1이닝 방어율 6.14)

 

허망하게 다시 떨어진 트리플A 에서 성적이 나올리도 없었다.

이렇게 피어밴드의 14시즌이 끝났다.

(트리플A - 125이닝 25게임 20선발 8승6패 방어율 5.11)

 

그리고 15시즌, 한국 프로야구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유니폼을 입은 그가 온다.

14시즌 중 브랜든 나이트의 대체 용병으로 고려됐었던 피어밴드는

30만 달러도 안되는 연봉에 낯선땅의 무대를 밟게 되었다.

(5년전 시애틀의 유니폼을 벗었을때 그의 연봉은 40만5천 달러였다.)

 

이제 85마일밖에 나오지않는 패스트볼은 주무기가 아니다.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과 섞어던져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공이 되었다.

 

그에게 미국에서 겪은 야구는 염증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인다.

공교롭게도 기회조차 나지않는 팀을 골라다녔고

그나마 작게 주어진 기회는 잡지를 못했다.

(인간적으로 너무 기회가 없긴 했다.)

촉망받던 팀내 유망주 라이벌 킹펠은 다른 세계의 선수가 되었다.

선수로서 자신의 가치는 바닥을 쳤다.

 

배가불러 넥센 히어로즈에 배짱을 부린 헨리 소사와는 완전 딴판의 선수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유난히 장문의 글을 쓰긴 했지만 그가 앞으로 야구를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이다. 기본적으로 나이에 비해 구속이 너무 떨어지고 뚜렷한 장점이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이미지는 아주 잘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성공한다면. 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인간에게는 두번의 기회가 있다고들 한다.

피어밴드의 야구인생에 한국 프로야구가 두번째 기회였으면 한다.

이를 악물고 야구공이 아닌 절실함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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